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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아테네에 있어서의 철학 (1)

1. 희랍의 소피스트들 (1)

희랍 식민지에 있어서의 우주론적 사색이 소멸하기에 앞서 1,2세기 동안 희랍인들 사이에는 또 하나의 철학적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 움직임은 기원전 5세기의 후반 동안에 국력과 부가 절정에 달하였던 아테네가 그 중심이었다. 그 대표적 인물들은 본토인이 아니라 희랍의 여러 도시로부터 온 사람들이었다. 아테네로 모여든 까닭은 아테네가 자기들의 포부를 발전 시키기에 알맞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일반적으로 페리클레스의 시대라고 불리워지는 시대로서 정치적 업정, 문화의 전성, 그리고 예술의 숭고성에 대한 인식의 보급 등이 그 어느 때보다도 현저한 시기였다. 이처럼 아테네는 문화적 분위기 때문에 이름이 높았으므로, 각처의 희랍 사람들이 흔히 아테네에 체류하면서 그 사회에 참여하는 일이 많았다. 이와 같은 ㅅ나람들 가운데는 이른바 소피스트라고 불리우는 일파가 있었다. 

 소피스트라는 말은 전통적으로나 또는 현재에 있어서나 보통 비난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즉 수사학적 허식, 지적 천박성, 심지어는 도덕적 불성실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옛 문구가 단적으로 표명하고 있는 바와 같이 "좋지 않은 이론을 좀더 좋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을 대체적으로 소피스트라고 부른다. 그리고 희랍의 역사상에는 편파적이기는 하지만 이런 용어에 대한 보증이 될 만한 사실들이 실제로 있는 것이다. 플라톤은 소피스트라는 것을 평하여 "부유하고 뛰어난 젊은 사람들을 돈을 받고 낚는 사냥꾼"이라고 하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피스트의 특징을 "파상적인 지혜를 농하여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였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와 같은 평을 한 기원전 4세기에는 소피스트의 활동이 이미 퇴폐해 있었으며, 어느 정도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바와 같은 비난을 받을 만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에 있어서의 소피스트의 활동은 전성기에 달해 있었고, 소피스트들은 '지자'라고 자처하면서 오만을 부리기로 이름이 높았다. 그들은 거리낌없이 자기들은 훌륭한 태도, 사회적 성공의 기술, 웅변에 의해서 집회를 좌우하는 방법, 정치적으로 출세하는데 필요한 술책 등을 가르칠 수 있다고 호언 장담하였다.

 설령 그처럼 소피스트들이 자화자찬한 태도에 약간의 단순한 오만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활동은 역시 희랍의 철학 발전에 있어서 지대하고 중요한 공헌을 한 것이 사실이다. 이 공헌이란 그들이 문화적, 예술적 그리고 정치적 문제들에 대한 점차로 증대해 가는 식자들의 진정한 관심에 대하여 필요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려고 노력하였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페리클레스 시대의 찬란한 사회적 성취와 관련된 철학적 성취였다. 일부에서는 식민지 철학자들의 우주론적, 자연주의적 관심을 이어 간 소피스트들도 없지 않았지만, 그들의 활동의 중점은 어디까지나 근본적으로 인간 중심적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활동이 희랍인의 생활에 미친 영향은 철학적 탐구의 대상을 옮겨 놓은 점 (물리적 자연으로 부터 인간에로, 이해를 초월한 과학으로부터 실제적 인간 문제에 대한 근본적 관심에로, 좀더 궁극적인 것으로부터 좀더 직접적인 것에로, 세계의 분석으로부터 세계를 다루는 기술과 방법의 안출에로 옮겨 놓은 점)에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그들이 관심을 기울인 것은 문법과 수사학이요, 웅변술과 시학이요, 여러 가지 문학적 스타일의 장단점이요, 교육과 정치학이었다. 그들은 우주론적 탐구의 문제에 대하여는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지만, 대개는 어떤 만족할 만한 해결을 얻는 가능성에 관하여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객관적인 자연이 문젯거리인 채로 남아 있는 세계 안에서라도, 인간은 시민적인 사회 생활 속에서 자기 자신의 힘을 유리하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으리라는 자신을 품고 있었다. 소피스트들은 예의 바르고 세련되고 세계주의적이었으며, 또 번영을 사랑하고 잘 사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은 잘 산다는 말의 두 가지 의미, 즉 안락하게 또는 심지어 호화스럽게 산다는 의미와 점잖게 또는 훌륭하게 산다는 의미와의 두 의미를 혼동하고 있었던 것같이 보인다.그들이 때로는 안락하게 사는 것이 곧 훌륭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음은 거의 확실하다.

 소피스트들의 이름이 오늘날에 와서는 나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보통이거니와, 이러한 소피스트들은 플라톤이 그의 저술 속에서 묘사한 바로 그 소피스트인 것이다. 이 장의 첫머리에 소개된 사람들 중에서, 그 저서가 오늘날까지 전해 오는 사람은 오직 이소크라테스뿐이다. 그는 화려한 문체를 계발해 준 교훈적인 훌륭한 논문을 썼다. 그 외의 소피스트들은 현존하는 저서로써 알려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주로 플라톤이 서술한 비체계적이며 확실히 풍자적인 성격 묘사를 통하여 소개되어 있다. 플라톤은 익살맞게 히피아스를 기억술을 발명한 사람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그리고 프로디코스에 대해서는, 거의 같은 뜻을 지닌 말들의 의미를 세밀히 구별해 보려고 열심히 부자연스러운 잔ㅈ꾀를 부렸다고 묘사하였다. 플라톤이 진지하게 주의를 기울인 사람은 프로타고라스, 트라시마코스, 그리고 고르기아스였다. 그러나 플라톤이 이들 중에서 그나마도 호의를 가지고 다룬 사람은 다만 프로타고라스뿐이었다.

 프로타고라스는 예로부터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라는 명제로 유명한 사람이다. 우리가 프로타고라스에 관해서 아는 것은 모두가 이 명제 속에 내포되는 있는 사상의 부연으로서 다루어질 수 있을 따름이다. 프로타고라스는 모든 사물을 인간 자신에게 나타나는 대로, 그리고 그것들이 인간 문제에서 맡아보는 구실에 의해서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 것같이 보인다.

 

서양 철학사 스털링 P.램프레히트 지음 을유문화사